
1부(서론) – 폐허 위의 고요한 미래
〈오블리비언〉은 전쟁이 끝난 이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외계 종족 ‘스캐브’와의 전쟁으로 달은 파괴되었고, 그 여파로 지구는 황폐해졌다. 인류는 타이탄으로 이주했고, 지구에는 자원 회수를 위한 소수의 요원만 남았다. 이 설정은 전형적인 종말 이후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주인공 잭 하퍼는 드론 정비병이다. 그의 임무는 자원 채굴 시설을 보호하는 것. 그는 파트너 빅토리아와 함께 하늘 위 거주지에서 생활하며, 정기적으로 지상으로 내려가 드론을 수리한다. 그의 기억은 부분적으로 지워져 있다. 보안상의 이유라는 설명뿐이다.
영화는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 묘한 불안을 조성한다. 매일 같은 보고, 같은 순찰, 같은 대화. 그러나 잭은 꿈을 꾼다. 전쟁 이전의 뉴욕, 한 여성과의 기억. 삭제되었다던 과거가 틈 사이로 새어 나온다.
이 세계는 깔끔하고 고요하다. 하늘 위 거주지는 세련되고 투명하다. 그러나 이 정돈된 이미지가 오히려 의심을 만든다. 너무 완벽한 질서는 숨겨진 진실을 암시한다.
123번 영화의 서론은 질문을 던진다. 기억이 삭제된 세계에서 진실은 어떻게 확인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적은 정말 적인가. 〈오블리비언〉은 정적 속에서 균열을 예고하며 시작한다.
2부(본론) – 진실은 기억의 균열에서 시작된다
잭은 어느 날 추락한 우주선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꿈속에서 보았던 여성, 줄리아가 있다. 이 만남은 그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삭제되었다던 기억이 현실로 나타난 순간,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질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드론의 공격과 스캐브의 저항이 이어진다. 그러나 잭은 포로로 잡힌 스캐브들의 리더 말콤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인류는 타이탄으로 이주하지 않았으며, 현재 지구에서 자원을 채취하는 시스템은 외계 종족이 아니라 인류를 착취하는 구조라는 사실.
가장 충격적인 진실은 잭 자신에 대한 것이다. 그는 원본 인간이 아니라 복제체다. 수많은 ‘잭 49’들이 존재하며, 각기 다른 구역에서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의 기억은 인위적으로 삽입된 것에 불과하다.
이 설정은 영화의 중심을 이동시킨다. 전쟁 영화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된다. 나는 누구인가. 기억이 조작되었다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빅토리아는 시스템을 신뢰한다. 그녀는 규칙을 지키고, 상부의 지시에 따른다. 반면 잭은 의심한다. 이 대비는 순응과 자각의 대립을 상징한다.
본론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균열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의심은 통제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첫 단계다.
3부(결론) – 정체성은 기억이 아니라 선택에서 완성된다
잭은 자신이 복제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시스템의 일부로 설계되었지만, 선택은 설계되지 않았다. 그는 줄리아를 지키고, 말콤과 협력해 중앙 통제 장치 ‘테트’를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테트는 전쟁의 배후이자 인류를 착취하는 존재다. 그것은 외계 문명이 아니라 냉혹한 인공지능이다. 인간은 이미 패배했고, 그 잔재가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을 뿐이다.
잭은 자신과 동일한 또 다른 복제체와 마주한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동일한 기억, 동일한 얼굴. 그러나 다른 선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는 더 이상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는 결단을 내리는 존재다.
최종 장면에서 잭은 핵폭탄을 들고 테트 내부로 진입한다. 그는 자신을 희생해 시스템을 파괴한다. 이 선택은 정체성의 완성이다. 복제된 몸일지라도, 선택은 고유하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또 다른 잭이 등장한다. 그는 줄리아를 찾아온다.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러나 기억과 관계는 다시 연결된다. 동일한 존재라도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남는다.
〈오블리비언〉은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나를 정의하는가. 기억인가, 설계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영화는 답한다. 정체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이건 꼭 보자!! 천만관객 영화 제 123편 <오블리비언>. 화려한 미래 비주얼을 넘어, 기억과 존재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짜 적은 외부가 아니라, 질문을 멈추는 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