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서론) – 보이지 않는 전쟁
〈콘스탄틴〉은 겉으로 보기에는 악마를 퇴치하는 오컬트 액션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경계’다. 천국과 지옥, 선과 악, 신앙과 회의 사이에 서 있는 인간의 위치를 묻는 이야기다.
존 콘스탄틴은 평범한 엑소시스트가 아니다. 그는 천사와 악마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어린 시절 자살 시도로 지옥을 잠시 경험한 이후, 그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동시에 본다. 그의 눈에는 길거리의 노숙자도, 지하철의 승객도 다른 형체로 겹쳐 보인다. 세상은 단층 구조가 아니다.
영화의 세계관은 명확하다. 천사와 악마는 직접 인간 세계에 개입할 수 없다. 대신 혼혈 존재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일종의 ‘휴전 협정’과 같다. 겉으로는 평화지만,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경쟁이 이어진다.
콘스탄틴은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중간자다.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신을 원망한다. 그는 자살로 인해 지옥에 갈 운명을 선고받았고,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악마를 사냥한다. 그의 행동은 신앙이 아니라 거래에 가깝다.
도시는 어둡고 축축하다. 로스앤젤레스의 거리, 네온사인, 낡은 아파트. 영화의 미장센은 신비롭기보다 현실적이다.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지만, 공간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점이 공포를 강화한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120번 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선과 악이 명확히 나뉜 세계에서, 인간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구원은 거래로 얻어질 수 있는가. 〈콘스탄틴〉은 이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2부(본론) – 구원은 거래가 될 수 있는가
이야기는 형사 안젤라 도드슨의 등장으로 본격화된다. 그녀의 쌍둥이 자매 이사벨은 정신병원에서 자살했다. 그러나 안젤라는 그 죽음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 사건은 콘스탄틴과 그녀를 연결한다. 이사벨 역시 콘스탄틴처럼 다른 존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은 사건을 조사하며 점점 더 깊은 음모에 다가간다. 혼혈 악마들이 협정을 깨고 인간 세계에 개입하려는 움직임. 그 중심에는 루시퍼의 아들 맘몬이 있다. 그는 지옥을 벗어나 인간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 천국과 지옥의 균형이 무너질 위기다.
영화는 오컬트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거울을 통해 지옥으로 진입하고, 성수를 총탄처럼 사용하며, 성서적 상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이 세계에서 종교는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물리적 도구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폐암이 말기임을 안다. 그는 하루에 수십 개비의 담배를 피운다. 자살 시도로 인해 이미 지옥행이 확정된 그에게 삶은 연장된 형벌과 같다. 그는 악마를 퇴치하며 구원의 점수를 쌓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라기보다 계산이다.
안젤라는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지만, 동시에 위험에 노출된다. 그녀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며 세계관이 흔들린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계를 넘는다. 콘스탄틴은 냉소 속에서, 안젤라는 혼란 속에서.
중반부에 등장하는 천사 가브리엘은 영화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인간이 고통을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구원은 자비가 아니라 시험이라는 관점. 이는 신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위험성을 드러낸다.
본론은 이렇게 말한다. 선과 악은 단순히 대립하지 않는다. 각자의 정의를 가지고 충돌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인간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3부(결론) – 구원은 계산이 아니라 선택이다
맘몬을 인간 세계로 불러오기 위한 의식이 완성되고, 안젤라는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한다. 가브리엘의 의도는 명확하다.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 스스로 신을 찾게 하겠다는 것. 천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아이러니를 낳는다. 선의 이름으로 행해진 선택이 반드시 선한가.
콘스탄틴은 마지막 수를 둔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자살이라는 금기를 다시 선택하는 순간, 루시퍼가 직접 인간 세계로 내려온다. 이는 계약의 틀을 깨는 행위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영혼을 미끼로 맘몬을 저지한다.
루시퍼는 냉소적이면서도 공정하다. 그는 아들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가브리엘의 날개를 빼앗는다. 그리고 콘스탄틴의 영혼을 가져가려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난다. 콘스탄틴은 이기적 계산이 아니라, 타인을 구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진심이 천국의 규칙을 바꾼다.
지옥으로 떨어질 예정이었던 그는 천국행으로 바뀐다. 그러나 루시퍼는 그를 살려둔다. 다시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는 조롱이자 인정이다. 콘스탄틴은 두 번째 삶을 얻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담배를 버린다. 폐암은 사라졌지만, 그의 냉소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는 여전히 경계에 서 있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으로서.
〈콘스탄틴〉은 단순한 오컬트 액션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과 자유의지, 죄와 구원의 문제를 장르적 외피로 풀어낸 작품이다. 선과 악은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건 꼭 보자!! 천만관객 영화 제 120편 <콘스탄틴>. 화려한 엑소시즘과 지옥의 비주얼을 넘어, 인간의 선택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결국 인간은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